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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미 짬짜미 문제완 내 속에 숨어 있다 마음을 훔치는 말 길을 걷고 산을 타고 바쁜 일 와중에도 슬며시 눈치를 보다가 깨방정을 떨고 있다 허접한 내 일상을 슬쩍 낚아채는 여울목 물결처럼 비포장 버스처럼 오늘도 다녀가신다 초라니 몸짓으로 2023. 1. 2.
미필적 고려장 미필적 고려장 문제완 어머니 웅얼웅얼 과거를 뒤척이다 서러운 세월 속을 거꾸로 잘도 든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오랜 날을 방치해 둔 흐려진 시력으로 허공을 바라보다 낯설게 낡아가는 원반에 갇히었나 감금된 한 생의 울음, 옹알이로 풀렸다 비명조차 삼켜버린 마침표 하나 찍고 헛기침 터를 잡는 구석진 허방다리 옹글게 쟁여진 말씀, 달맞이꽃 피어난다 2023. 1. 2.
물수제비 물수제비 -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 문제완 주류主流가 아니어도 좋다, 노래할 수 있다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이 모여 있다면 홍대 앞 지하카페에 은파 타는 현의 선율 오동나무 나이테가 파문을 일으키고 간지럼이 극에 닿자 총총 뜨는 물수제비 공명共鳴이 둥글게 이는 희유곡이 귀로 운다 스물다섯 줄에 달린 무채색 신명 같은 가락의 상류쯤에 악기가 된 사람 있어 학슬*에 여민 울음이 진양조로 넘는다 *학슬 : 가야금 몸통에 색사를 감아 줄을 고정하는 틀, 모양이 학의 무릎을 닮아 붙여진 이름 2023. 1. 2.
그 때 빨래터 그 때 빨래터 문제완 봄바람 마중하듯 빨래터 울 어머니 우는 나를 보듬고, 빨랫감은 이고지고 냇물에 거품을 내며 그 속내도 빨아낸다 새색시 적 수줍음은 그늘에 가려지고 방방이 두드리며 그 무엇도 두드렸던, 손발에 물마를 날 없이 그거 환한 목숨까지 맑은 물에 얼굴 씻고 젓가슴도 풀어놓고 한 번씩 쓸어내리던 그 모습이 아련하다 그리워 더욱 그리운, 어린 날의 빨래터 2023. 1. 2.
봄이라고요 봄이라고요 문제완 입춘하고 불러보면 문밖에 와 있는 봄 보드란 바람의 살결 봄볕이 화답하면 물관부, 물오른 나무를 두드리는 신의 손길 신명으로 피어나는 저 꽃빛의 내재율 삼라만상 어느 것도 고맙기 그지없고 내 마음 송두리째 앗긴 아지랑이 그 소녀는, 2022. 12. 28.
용추계곡을 읽다 용추계곡을 읽다 문제완 앉아 보니 녹색 그늘 두고 온 젊음 같은 하늘은 쪽물 댕기 빛 널어 말린 구름 몇 덩이 내 쪽잠, 너덜겅 아래 물줄기에 젖는다 물비늘 반짝이며 잎사귀가 깃을 털자 매미 떼울음에 수런대는 여름한낮 저 멀리 귀를 세우며 무등산이 일어선다 2022. 12. 28.
이슬 이슬 문제완 추운 밤 꼬박 새우고 이렇게 맞은 새벽 어둠을 밀쳐가며 끙끙 앓으면서도 손 한번 내리지 않고 들어 올린 나뭇잎 2022. 12. 28.
찻물 익는 밤 찻물 익는 밤 문제완 달빛 어린 샘물 길어 찻물로 올립니다 옹이진 마음 자락 그도 함께 올립니다 몸 여는 찻잎을 따라 닫힌 눈을 뜹니다 찻잔 가득 찰랑이는 말 못할 그리움이, 저녁 답 그 빛깔로 수런대는 그 잔향이, 붉어진 달그림자로 깊어지는 산 빛이, 2022. 12. 28.
우수雨水, 아침 우수雨水, 아침 문제완 그림자 따라 돌다 귀가하는 해거름이 잦아진 바람결에 별 몇 점 부르는 몸짓 저녁놀 머물던 온기, 마루 쪽에 스며있다 지난겨울 빙화들이 흰 새벽을 몰고 와서 무채색 수묵화 한 점 부려놓고 떠났는가 처마 밑 은유의 공간 조용한 휴식이다 산자락을 끌어내린 계곡물이 수런대고 텃새들 새물새물 몰려왔다 몰려가고 못 다한 노래를 찾는가 목젖만 간지럽다 2022. 12. 28.
연일 낚시 연일 낚시 문제완 문고리 자물쇠가 족쇄처럼 잠겨있는 간판만이 덩그렇게 옛 장터를 찍고 있다 거미줄 걸린 유리창 흑백사진 한 장이다 너도나도 모여들던 정겹던 낚시가게 낚싯대 품어 안고 파도는 잠이 들었나 추억을 인화하는 듯 고요해진 저 바다 흙담 옆 폐문 속에 세월만을 낚아둔 채 바람은 그 곁에 와 갈매기가 되었다 진열대 뒹구는 찌가 월척 꿈을 꾸고 있다 2022. 12. 28.
여름 낮달 여름 낮달 문제완 오지게 익어가는 저 뙤약볕 오이 좀 봐 구리 빛 얼굴에는 땀줄기가 샛강을 내고 울 엄마 한 평생만한 남새밭을 매고 있다 고향 떠난 자식 걱정 모래밥이 뭉클하다 부뚜막 언저리엔 늘 챙겨둔 밥 한 그릇 고샅길 끝날 때 까지 목이 한 뼘 길어지고 파출부 일당으로 연명하는 막내딸이 동구 밖 낮게 떠서 핼쑥하게 내려본다 비루한 생의 허리가 꼭 너만큼 휘었다 2022. 12. 28.
새벽 길 새벽 길 문제완 숨비 소리 배어있는 가풀막 등산로에 서녘에 상현달이 숲 속에 내려앉아 휘휘한 어둠을 제치고 길을 하나 닦고 있다 이제 봄이 오시려나. 엿듣는 바람소리 졸참나무 잎 새 한 장 기지개로 몸을 풀고 미명에 붉어지는 하늘, 동녘이 눈을 뜬다 2022.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