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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꽃샘강론 시조집74

탐진강 갈대 탐진강 갈대 문제완 가을 강 상류 따라 은빛머리 휘날리며 가는 발목 젖어 사는 여자들이 있었네 은하에 목을 축이며 꿈을 꾸는 여자였네 짐승처럼 달려들어 소나기로 울던 태풍 한순간 갈대숲이 쑥대밭이 되던 밤에 여자들, 홀연히 일어나 삼천 배를 하였네 지난날의 뉘우침이 잿빛 울음인가 휘어지고 넘어져도 꺾이는 법이 없이 강물에 몸을 담그는 달밤 같은 여자였네 2023. 2. 11.
쇠비름 쇠비름 문제완 약이 된다, 한마디에 잡초가 약초된 것 텃밭을 죄다 덮는 질긴 생명력이 우리가 한눈 팔 사이 건강비법 이었다니 어느 누구 한평생을 잡초라 할 것인가 다시 보면 너는 내게 그들은 우리에게 언젠가 소중한 몫을 다할 날이 있으리니 2023. 2. 11.
식영정* 그늘 아래 식영정* 그늘 아래 문제완 마파람 지나가다 정자 아래 다소곳이 석천* 도포자락 같은 청솔가지 흔들흔들 자드락 푸른 솔잎이 받아 적는 성산별곡 옛 주인 아니어도 바람 따라 나도 앉아 선비님 남긴 말씀 편액으로 가는 눈길 행行간을 서성거린다, 오롯이 깃드는 정신 자미탄* 물줄기에 발 담그는 무등산이 길가는 나그네를 가만 불러 앉히고 세상에 어두워진 귀를 씻어내라 손짓한다 *소쇄원과 더불어 전남 담양군에 소재한 대표 정자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의 스승, 식영정의 주인) *광주호 2023. 2. 11.
일필휘지 일필휘지 문제완 쉬었다 내친걸음 거친 숨결 모아들어 모나게 꺾이다가 신나게 달리다가 필압筆壓이 지나간 자리 묵향이 따라간다 2023. 2. 11.
88고속도로 88고속도로 문제완 편도 1차선이라 정겨운 국도 같은 거창, 가조 지나가다 함양 쪽에 들어서면 온 산이 서녘 빛 색깔, 덩달아 후근 단다 2023. 2. 11.
풀벌레 풀벌레 문제완 분적산 오솔길에 도열한 이열종대 찌리릿, 찟찌리릿! 무슨 소식 타전일까 얼큰히 취한 가을이 뽕짝박자 맞춰준다 2023. 2. 11.
봄빛 수채화 봄빛 수채화 문제완 고양이 하나 담을 넘어 내 앞에 움찔, 섰다 꼬리를 치켜든 채 눈빛이 깊고 길다 쫑긋 귀 무얼 엿듣나, 담벼락도 숨죽이는데 지붕에 비낀 햇살이 굽은 등에 업힌 채로 쌔근대는 들숨날숨 바투 당길 때면 통통한 봄의 종아리 수염 끝에 스친다 2023. 2. 11.
개펄의 범주 개펄의 범주 문제완 벌교 꼬막 뻘밭에서 질척이는 짱뚱어들 회색 화폭 펼쳐놓고 큰 눈을 껌벅이며 발자국, 적묵積墨의 붓놀림 저 깜냥이 부럽다 지구 혈을 짚어가며 더듬더듬 새기는가 홀치기낚시 피하려고 뛰고 뛰는 뜀박질은 한생을 끌고 가느라 닳아버린 내 몸짓. 2023. 2. 11.
이스탄불이여, 이스탄불이여, 문제완 가슴은 아시아에 머리는 유럽에 두고 동서양이 어우러져 터키가 태어났으니 일상이 신화와 같은, 그 땅을 밟는다 신들이 와글와글 모여 사는 마을 마다 새벽녘 구름 위로 떠도는 슬픈 영혼 달빛도 신의 옷자락, 온 하늘을 덮는다 광기에 밑줄 치며 지나간 슬픈 사연 십자군 전쟁터에 어린소년 발자국이 회한 속 청색 얼굴로, 땅굴마다 일렁인다 2023. 2. 11.
울음을 듣다 울음을 듣다 문제완 창궐하는 선홍빛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자못 붉은 울음에 숲도 잠시 혼절하고 내 사랑 저랬을까나 바람처럼 감긴다 고양이 두 마리가 고요를 깨고 있다 사랑의 궤적 따라 태어난 족적인가 해종일 허기진 시간 내 그림자 따라간다 참다 터진 설움들이 울음이 되었는가 그 울음 노란 고양이 보드란 털가슴에 좌르르 음표 몇 올이 담장을 넘어간다 2023. 2. 11.
물기에 젖어 살다 물기에 젖어 살다 문제완 물이 물을 밀치는 샤워기 아래에서 땀에 찌든 체액들이 흘러내린 타일 바닥 포복한 울음 꽃인가 물비늘이 너울댄다 축축한 발가락사이 비눗물이 고여 든다 곰팡이 한 줄기가 구름처럼 얹혀있는 목욕탕 귀퉁이 벽면 물방울의 탈출기 타월에 감겨있는 젖은 세월을 보아라 평생을 닦아만 주다 후줄근한 저 속내가 가끔씩 눈가에 어리는 눈물 같지 않은가 2023. 2. 11.
나무가 되어 나무가 되어 문제완 산길을 패여 놓는 억센 장대비 속 검은 하늘 가르면서 번개가 긋고 가고 그 결에 벼락이 치니 섶나무가 휘어진다 길은 이쯤에서 맥없이 끊어지고 산길을 걷던 사람 하나씩의 나무가 되어 숲 속이 꿈틀거리며 움트는 걸 듣는다 한나절을 말도 없이 삼삼오오 너도밤나무 이런 속수무책을 산 능선에 빌어보며 사람이 한없이 약함을 산행에서 배운다 2023.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