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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106

마네킹 마네킹 문제완 어둔 매장 한쪽에서 떼었다 붙여지는 누구의 삭신이기에 저렇듯이 기구한가 어스름 깔릴 쯤 이면 홀연히 일어서는 오고가는 눈길 속에 머무는 인정 속에 네온사인 환히 켜진 인생의 골목마다 이 한밤 적막을 털고 잠 못 드는 사람 있다 2023. 2. 8.
틈, 그 사이로 틈, 그 사이로 문제완 볕 뉘 같던 벼슬자리 그마저 내려놓고 밤샘 술에 흠뻑 젖어 아침을 놓친 오후 아내가 빨래를 한다 어깨가 들썩인다 미닫이 문 사이로 햇살은 와글대는데 빨랫감은 간데없고 지청구 애먼 소리 살아 온 속내를 뒤집어 쥐어짜네, 이 봄날. 2023. 2. 8.
사레 사레 문제완 목젖을 치고 나온 불현 듯, 돌발 돌출 번개 치듯 잘라내는 금기의 말씀 있어 아찔한 목숨이 된다 들숨 날숨 멈추고 2023. 2. 8.
바위 옷 바위 옷* 문제완 바위도 새벽이면 옷을 갈아입는구나 한 달포 자고 난 듯 부스스 성긴 눈빛 백아산 너렁바위 옆 산철쭉도 잠을 턴다 푸른 숲에 깃들였던 산안개 돌아설 때 뉘 몰래 갈아입은 저 영롱한 이슬 잠옷 바람은 부엉이 목청, 바위 속을 헤집다 욕망의 속살 틈새 올올이 젖는 눈물 또 한번 어둠에도 못 다한 꿈결에도 별들은 산을 넘는다 돌에 옷을 입힌다 *화순 북면 소재 백아산에 있는 흰 거위 모양 바위 2023. 2. 8.
마이산 달빛 마이산 달빛 문제완 따스한 봄바람이 벚꽃과 잠든 사이 철없는 보름달은 산자락 능선 따라 마이산 탑 봉우리에서 고개를 내민다 바위산에 올라보니 구렁이 모양이다 절터로 가는 벚꽃길이 불길로 열리니 나는야 밝아오는 불빛 바라보며 노닌다 프레임 속 달빛은 점점 더 밝아온다 침묵하는 밤하늘을 카메라에 담아놓고 말없는 봉우리에다 마음 두고 내려 한다 2023. 2. 8.
씨앗처럼 씨앗처럼 문제완 산자락 억새 같은 은퇴의 길목으로 상처 입은 짐승처럼 세월 진 머슴처럼 그 누가 거기 있는가 새 봄을 꿈꾸는가 산삼 씨앗 하나 들고 온 친구의 말 혹독한 추위를 견대야 비로소 싹 튼다는 말 지금은 엄동설한 중 씨앗을 품은 나 2023. 1. 18.
호두알 호두알 문제완 장흥산 태생이라는 그 이름 귀족 호두 이 세계도 계급 있나 껍질 아래 또 껍질 뇌간을 건넌 한 생이 고명처럼 얹힌다 2023. 1. 18.
요월정(邀月亭)시편 요월정(邀月亭)시편 문제완 마을 터는 음양오행 土자리라 黃이요. 생김새는 굽이굽이 웅비하는 龍의 형상 달 따라 노래 부르니 황룡리 요월인가 한나절 황룡강에 낚시대를 드리우면 남루한 어제 일들 수심만큼 갈아 앉고 가슴 속 닫아둔 창이 열리기도 하는 것을 솔숲이 자리 잡은 저녁 강 어스름에 못다 부른 이름 있어 발걸음 멈춰서면 누군가 별밭을 따라 하늘 길을 내고 있다 2023. 1. 18.
여울목 여울목 문제완 제 발의 물갈퀴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고요히 뜰 수 있는 물오리의 한생처럼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너 때문에 있는 나 2023. 1. 18.
천년을 꿈꾸다 천년을 꿈꾸다 문제완 천일염과 메주콩이 궁합 좋게 짝을 이뤄 반듯하게 빚어놓은 아랫목의 메주덩이 뜬 메주 담색 틈새가 할머니 주름같다 발효란 애간장이 애원 속에 녹아든 것 종갓집 맏며느리 실한 마음 그도 녹아 속내를 열어 보이듯 곰팡이가 곰실댄다 옹기 속에 들어앉은 맛에도 길이 있어 우엉과 시래기에 삭힌 된장 푸는 아침 아내도 세월을 아는지 손맛이 구수하다 2023. 1. 18.
채찍질 채찍질 문제완 채찍 맞아 붉어지는 팽이를 바라본다 이윽고 저 팽이를 나 인양 바라본다 한 점에 찍힌 중심 축 세상은 원심력이다 너릿재 넘은 아침 무지개 걸린 바퀴 휘감기는 저 바람을 송두리째 밀어내고 자동차 제 길을 간다 동그라미 그리며 누구나 저렇듯이 달리는 재주 있어 누가 또 후려치나 거침없이 붙는 속도 무색한 애년艾年의 나이 멍든 자국 더러 있다 2023. 1. 18.
절대 감속, 안개 지역 절대 감속, 안개 지역 문제완 능주골 지방도로 차 숨소리 높아간다 눈앞을 가리고 있는 희디 흰 수천의 손길 찻길이 휘어지는 곳, 복사꽃도 잠긴다 고지서 날아들 듯 감속 안내 표지판에 닦을수록 흐려지는 물방울이 고여 들고 갈대 숲 우거진 강물이 실타래로 풀린다 바람에 묻는 길이 계면조 같은 나날 사방천지 가늠 못해 엎드려 울던 이력 이제야 희미하게 뵈는 지금 내가 저렇거니 2023.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