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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106

개펄의 범주 개펄의 범주 문제완 벌교 꼬막 뻘밭에서 질척이는 짱뚱어들 회색 화폭 펼쳐놓고 큰 눈을 껌벅이며 발자국, 적묵積墨의 붓놀림 저 깜냥이 부럽다 지구 혈을 짚어가며 더듬더듬 새기는가 홀치기낚시 피하려고 뛰고 뛰는 뜀박질은 한생을 끌고 가느라 닳아버린 내 몸짓. 2023. 2. 11.
이스탄불이여, 이스탄불이여, 문제완 가슴은 아시아에 머리는 유럽에 두고 동서양이 어우러져 터키가 태어났으니 일상이 신화와 같은, 그 땅을 밟는다 신들이 와글와글 모여 사는 마을 마다 새벽녘 구름 위로 떠도는 슬픈 영혼 달빛도 신의 옷자락, 온 하늘을 덮는다 광기에 밑줄 치며 지나간 슬픈 사연 십자군 전쟁터에 어린소년 발자국이 회한 속 청색 얼굴로, 땅굴마다 일렁인다 2023. 2. 11.
울음을 듣다 울음을 듣다 문제완 창궐하는 선홍빛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자못 붉은 울음에 숲도 잠시 혼절하고 내 사랑 저랬을까나 바람처럼 감긴다 고양이 두 마리가 고요를 깨고 있다 사랑의 궤적 따라 태어난 족적인가 해종일 허기진 시간 내 그림자 따라간다 참다 터진 설움들이 울음이 되었는가 그 울음 노란 고양이 보드란 털가슴에 좌르르 음표 몇 올이 담장을 넘어간다 2023. 2. 11.
물기에 젖어 살다 물기에 젖어 살다 문제완 물이 물을 밀치는 샤워기 아래에서 땀에 찌든 체액들이 흘러내린 타일 바닥 포복한 울음 꽃인가 물비늘이 너울댄다 축축한 발가락사이 비눗물이 고여 든다 곰팡이 한 줄기가 구름처럼 얹혀있는 목욕탕 귀퉁이 벽면 물방울의 탈출기 타월에 감겨있는 젖은 세월을 보아라 평생을 닦아만 주다 후줄근한 저 속내가 가끔씩 눈가에 어리는 눈물 같지 않은가 2023. 2. 11.
나무가 되어 나무가 되어 문제완 산길을 패여 놓는 억센 장대비 속 검은 하늘 가르면서 번개가 긋고 가고 그 결에 벼락이 치니 섶나무가 휘어진다 길은 이쯤에서 맥없이 끊어지고 산길을 걷던 사람 하나씩의 나무가 되어 숲 속이 꿈틀거리며 움트는 걸 듣는다 한나절을 말도 없이 삼삼오오 너도밤나무 이런 속수무책을 산 능선에 빌어보며 사람이 한없이 약함을 산행에서 배운다 2023. 2. 11.
환장하네! 환장하네! 문제완 1. 미주알에 밀려 나올 미물이 닿아 있다 소스라친 배출 압력 습자지 한 장 차이 어쩌나 애면글면해도 이제는 속수무책 2. 눈빛 가득 완연하게 움 자리 뾰족 내민 목젖에 해 솟는 듯 돋을새김별이 뜨듯 터질 듯 까칠까칠한 내숭떠는 저 봄빛을 2023. 2. 8.
낯선 손님 낯선 손님 문제완 어중간히 잠이 들 때 비몽사몽 혼미할 때 자정 무렵 머리맡을 서성대다 침입하는 머리칼 휘어잡으며 귀에 다 속살거린다 빤히 쳐다보다 이불까지 들춰보고 창문을 들락거리며 사방 벽을 기어오르다 손사래, 그 어둠 속으로 줄행랑이 제대로다 2023. 2. 8.
햇빛 햇빛 문제완 평생을 남의 집만 손대며 산 목수의 말 반 지하 단칸방은 노숙마냥 밤이 찼다고, 하늘빛 환한 내 집은 언제 지어 들어 볼까나 2023. 2. 8.
포옹 포옹 -화가, 석창우 문제완 수만 볼트 고압전류에 양팔을 잃은 그가 먹물로 그려내는 역동적인 저 춤사위 양 손을 놀리고 있는 나를 묶어 가둔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자유롭다’ 말하는 이 손바닥 감촉일랑 까마득 잊혔다며 갈고리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이 발로 찍는 낙관 앞에 무릎 꿇고 가만 앉아 긍정의 힘이 있어 아침은 늘 오는 것 뜨겁게 안을 줄 아는 한 가슴을 배운다 2023. 2. 8.
심해深海 심해深海 - 칠예가 전용복 문제완 옻나무 가지에는 일월日月의 물결무늬 깊은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을 찾듯 잉걸불 피어 올리며 화폭을 달구고 있다 휘휘 도는 칼끝에서 한 틈이 생겨나고 그쯤에서 섬광처럼 환하게 열리는 하늘 무너진 메구로가조엔* 살아나서 꿈틀댄다 검게 우는 붓질 따라 출렁이는 마음일 때 바다 속 숱한 상처가 진주로 영글듯이 사나이 살아 온 궤적이 신의 손에 오롯하다 * 1931년에 세워진 일본의 최고의 연회장을 전용복이 복원 2023. 2. 8.
어느 하루 어느 하루 문제완 낯선 곳 시외버스 내 앞에 우뚝, 섰다 어정쩡한 시선 속에 기사 눈빛 ‘갈 겨 말 겨?’ 기댄 곳 올려다보니 정류장 간판이었네 2023. 2. 8.
바람을 찾아 바람을 찾아 문제완 하늘에 낮은 구름이 깔려있는 아침나절 일제히 숨어버린 바람의 묘한 행방 그 누구 기억 골방에 정지된 시간일까 나무와 나무사이 우두커니 서 있는 나 그물막 같은 나날 생각도 그물 져서 한여름 생의 모퉁이 바람 쪽을 기웃댄다 2023.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