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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135

미필적 고려장 미필적 고려장 문제완 어머니 웅얼웅얼 과거를 뒤척이다 서러운 세월 속을 거꾸로 잘도 든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오랜 날을 방치해 둔 흐려진 시력으로 허공을 바라보다 낯설게 낡아가는 원반에 갇히었나 감금된 한 생의 울음, 옹알이로 풀렸다 비명조차 삼켜버린 마침표 하나 찍고 헛기침 터를 잡는 구석진 허방다리 옹글게 쟁여진 말씀, 달맞이꽃 피어난다 2023. 1. 2.
물수제비 물수제비 -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 문제완 주류主流가 아니어도 좋다, 노래할 수 있다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이 모여 있다면 홍대 앞 지하카페에 은파 타는 현의 선율 오동나무 나이테가 파문을 일으키고 간지럼이 극에 닿자 총총 뜨는 물수제비 공명共鳴이 둥글게 이는 희유곡이 귀로 운다 스물다섯 줄에 달린 무채색 신명 같은 가락의 상류쯤에 악기가 된 사람 있어 학슬*에 여민 울음이 진양조로 넘는다 *학슬 : 가야금 몸통에 색사를 감아 줄을 고정하는 틀, 모양이 학의 무릎을 닮아 붙여진 이름 2023. 1. 2.
그 때 빨래터 그 때 빨래터 문제완 봄바람 마중하듯 빨래터 울 어머니 우는 나를 보듬고, 빨랫감은 이고지고 냇물에 거품을 내며 그 속내도 빨아낸다 새색시 적 수줍음은 그늘에 가려지고 방방이 두드리며 그 무엇도 두드렸던, 손발에 물마를 날 없이 그거 환한 목숨까지 맑은 물에 얼굴 씻고 젓가슴도 풀어놓고 한 번씩 쓸어내리던 그 모습이 아련하다 그리워 더욱 그리운, 어린 날의 빨래터 2023. 1. 2.
봄이라고요 봄이라고요 문제완 입춘하고 불러보면 문밖에 와 있는 봄 보드란 바람의 살결 봄볕이 화답하면 물관부, 물오른 나무를 두드리는 신의 손길 신명으로 피어나는 저 꽃빛의 내재율 삼라만상 어느 것도 고맙기 그지없고 내 마음 송두리째 앗긴 아지랑이 그 소녀는, 2022. 12. 28.
용추계곡을 읽다 용추계곡을 읽다 문제완 앉아 보니 녹색 그늘 두고 온 젊음 같은 하늘은 쪽물 댕기 빛 널어 말린 구름 몇 덩이 내 쪽잠, 너덜겅 아래 물줄기에 젖는다 물비늘 반짝이며 잎사귀가 깃을 털자 매미 떼울음에 수런대는 여름한낮 저 멀리 귀를 세우며 무등산이 일어선다 2022. 12. 28.
이슬 이슬 문제완 추운 밤 꼬박 새우고 이렇게 맞은 새벽 어둠을 밀쳐가며 끙끙 앓으면서도 손 한번 내리지 않고 들어 올린 나뭇잎 2022. 12. 28.
찻물 익는 밤 찻물 익는 밤 문제완 달빛 어린 샘물 길어 찻물로 올립니다 옹이진 마음 자락 그도 함께 올립니다 몸 여는 찻잎을 따라 닫힌 눈을 뜹니다 찻잔 가득 찰랑이는 말 못할 그리움이, 저녁 답 그 빛깔로 수런대는 그 잔향이, 붉어진 달그림자로 깊어지는 산 빛이, 2022. 12. 28.
우수雨水, 아침 우수雨水, 아침 문제완 그림자 따라 돌다 귀가하는 해거름이 잦아진 바람결에 별 몇 점 부르는 몸짓 저녁놀 머물던 온기, 마루 쪽에 스며있다 지난겨울 빙화들이 흰 새벽을 몰고 와서 무채색 수묵화 한 점 부려놓고 떠났는가 처마 밑 은유의 공간 조용한 휴식이다 산자락을 끌어내린 계곡물이 수런대고 텃새들 새물새물 몰려왔다 몰려가고 못 다한 노래를 찾는가 목젖만 간지럽다 2022. 12. 28.
연일 낚시 연일 낚시 문제완 문고리 자물쇠가 족쇄처럼 잠겨있는 간판만이 덩그렇게 옛 장터를 찍고 있다 거미줄 걸린 유리창 흑백사진 한 장이다 너도나도 모여들던 정겹던 낚시가게 낚싯대 품어 안고 파도는 잠이 들었나 추억을 인화하는 듯 고요해진 저 바다 흙담 옆 폐문 속에 세월만을 낚아둔 채 바람은 그 곁에 와 갈매기가 되었다 진열대 뒹구는 찌가 월척 꿈을 꾸고 있다 2022. 12. 28.
여름 낮달 여름 낮달 문제완 오지게 익어가는 저 뙤약볕 오이 좀 봐 구리 빛 얼굴에는 땀줄기가 샛강을 내고 울 엄마 한 평생만한 남새밭을 매고 있다 고향 떠난 자식 걱정 모래밥이 뭉클하다 부뚜막 언저리엔 늘 챙겨둔 밥 한 그릇 고샅길 끝날 때 까지 목이 한 뼘 길어지고 파출부 일당으로 연명하는 막내딸이 동구 밖 낮게 떠서 핼쑥하게 내려본다 비루한 생의 허리가 꼭 너만큼 휘었다 2022. 12. 28.
새벽 길 새벽 길 문제완 숨비 소리 배어있는 가풀막 등산로에 서녘에 상현달이 숲 속에 내려앉아 휘휘한 어둠을 제치고 길을 하나 닦고 있다 이제 봄이 오시려나. 엿듣는 바람소리 졸참나무 잎 새 한 장 기지개로 몸을 풀고 미명에 붉어지는 하늘, 동녘이 눈을 뜬다 2022. 12. 28.
봄날 들꽃 봄날 들꽃 문제완 무서리 흠뻑 내린 무등산 지난겨울 깡마른 가지마다 눈보라 흩뿌려도 고드름 달린 바위 틈 꽃씨 몇 점 숨었다 오시는 샛바람에 촉촉해진 봄기운이 부드럽게 흙을 감싸 한 밤을 꼬박 새우자 부스스 기지개 켜며 아침 이슬 받는다 더디 깬 꽃잠에도 꽃대를 밀어올려 금낭화는 수줍은 듯, 돌단풍은 숨은 채로 꽃 얼굴 햇살에 내밀고 재재재, 말을 건다 2022.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