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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162

[시조 평론] 현대시조의 매력에 빠져보자 [시조 평론] 현대시조의 매력에 빠져보자 시조시인 문제완 현대시조는 일반적으로 고시조와 대비되며, 또한 현대시의 탄생과 연계하여 비교되는 측면이 있다. 현대시조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인가. 시조의 일반적 이해와 격조 높은 시조 작품을 감상해 보자. 그리고 정형성과 음보 등 현대시조의 특징과 매력은 무엇인가를 초점으로 필자의 창작경험에 비춰 그 내용을 설명한다. 시조에 어떤 매력을 담을 것인가란 과제 또한 아울러 본다. 1. 시조는 오랜 역사를 거쳐 진화했다 우리나라 정형시인 시조는 고려 말부터 형태가 완성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시조(時調)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에 널리 쓰이게 되었으나, 원래 ‘時節歌調’라는 용어를 줄여 時調라 한 것이다. 이는 새로 유행하는 노래를 뜻했고, 고려말 이방원의 나 정.. 2022. 12. 3.
효산리 소경小景 효산리 소경小景 문제완 침묵이 자리한 야트막한 산 아래 푸석한 뼈들끼리 서로를 의지한다 원시의 고인돌 모습이 전설처럼 빛난다 갈필로 헤쳐 묻힌 황야에 주검들이 정지한 시간 속에 땅 속 울음 듣는다 선사의 갈색 화선지에 들꽃이 피고 있다 2022. 12. 3.
낙하落下의 세월 낙하落下의 세월 큰 수세미 몇 개 따다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떨어진 땅바닥에서 하늘을 처다 본다 무릎에 성난 상처도 물끄러미 나를 보고 비루함을 만나보란 스승님 옛 말씀이 번개처럼 뇌리에 통점痛點되어 지나간다 검붉게 넘던 노을이 한심한 듯 내려다보고 내리막길 하산하다 골절당한 기억 속에 터진 살점 부여잡고 마음마저 기운다 선혈에 멍울진 세월, 상흔의 꽃 피우고 2022. 11. 18.
가을 숲 가을 숲 간절한 소망하나 묻어둔 채 불타는 오색으로 버무러진 산야 능선이 있어 오름이다 새털구름 바람으로 내려와 억새길 사이사이 운해로 흘러 야생화를 간지럽힌다 간밤 서리로 눈물 밴 잎새 상흔으로 자리하여 산들거리고 못내 서성이는 침묵이 된다 아릿한 가슴으로 너덜겅에 앉아 삶의 애완 안주 삼아 벗과 함께 나이테를 세어본다 천둥벼락이 치는 여름을 기억하고 하얀 눈꽃 겨울을 마중하며 가을 숲은 그림움으로 깊어간다 ※ 2008년 광주광역시 시인협회 백일장 장원작 2022. 11. 13.
삼각 통증 삼각 통증 아파트 옆 작은 텃밭에 고구마며 콩이랑 채소를 심고 수확하는 재미를 즐기던 어머니 계단에서 낙상하여 중환자실로 가 유언 한마디 없이 저승으로 가셨다 하품마저 호사인 어느 일요일 부엌 옆 작은 방에 달라붙은 베란다를 스트레스 털어 내듯 청소를 한다 예전에 나름 인기 높던 산수화며 남원 옻칠 밥상과 수험서들 좀 슬고 곰팡이 피어 푸념 어린 모습이다 헝겊 봉지에서 삭은 퇴비 냄새가 난다 어머니가 텃밭에 뿌리려고 놔둔 메밀 씨앗이다, 주인 잃고 3년을 보낸 사면체 짙은 밤색들이 묵은 세월로 널려 있다 눈물 같은 메밀을 쓸어 담다 흘리고 송곳의 군말들이 나의 발을 찌른다 삼각 통증이 목울대의 울음 통로를 연다 2022. 11. 13.
산그늘 아래 산그늘 아래 용수동 하늘빛 밝은 곳에 산역꾼들이 작업해 놓은 묘지 하나 먼저 점령한 주검들 사이에 새치기하듯 낀 묏자리 검은 상복 입은 유족들은 인연의 끝을 잡고 애절함을 쌓는다 장례 집행자의 준엄에 따라 고인으로부터 가까운 서열대로 검은 흙 한 삽씩 유골함에 내려놓는다 작별의 눈물방울을 영수증인 양 사각형 흙집 사이에 떨어뜨리고 자식들은 구둣발로 둥그런 흙집을 완성했다 침묵이 된 고인을 부르는 목소리 낮달같이 소리 없는 울음이 된다 영정사진 겹주름에 작별 인사 남긴 유족들 산 그림자가 길어진 잿길을 나선다 능선에 선 소나무 몇 그루 침묵으로 묘지를 울컥 덮는데 하늘에 뭉게구름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2022. 11. 13.
풍선 비행 풍선 비행 영산강 죽산보를 향해 달린다 허풍이라도 좋고 허방다리일지라도 좋다 기분이 좋아지면 차창은 개방된다 차 안에 둔 비닐 포대가 푸드덕푸드덕 날개를 펴더니 잡다 놓친 닭처럼 열린 창으로 나갔다 차로에 버려진 포대를 주우러 오던 길 되돌아 간다 어! 어! 어! 저것 봐라 비닐 포대가 풍선이 되어 날고 있다 하늘을 날아오른 저 비상한 자태 어떻게 풍선이 됐지 어떻게 저렇게 높이 날지 바람의 희롱에 비닐 풍선은 하늘에서 여우같이 건들건들 잘도 날고 나주 들녘은 초록빛으로 한가롭다 2022. 11. 13.
울음 장만 울음 장만 세상 빛 본 지 한 달 애면글면 어리둥절 절박이 쌓여있는 혀에 달린 울음보 아가가 장만한 설움 팽팽한 저항이다 2022. 11. 8.
커피 한 끼 커피 한 끼 문제완 커피 한 잔 그 한 잔이 아침 밥이 밥이 된다 허기 한 끼 채우려는 한참 못난 궁핍으로 빈 배는 향기로 번지며 자발없이 아우성 2022. 11. 7.
노루잠 노루잠 설핏 든 잠결인가 눈앞이 삼삼하다 참으로 오래 전의 다 못한 두 마음이 한밤중 환청 같은 말 들숨날숨 들려온다 초저녁과 새벽녘을 곧추서는 촉수 하나 꿈길에 찾아 온 사람 기억도 가물한데 애먼 꿈 나를 밀친다 꿈 밖에 꿈은 없다 2022. 11. 5.
봄날 잔치 봄날 잔치 대각사 오솔길은 방금 뽑은 국수 다발 새벽을 열어가며 한발 한발 올라가면 물오른 나무 잎사귀 이슬 옷이 쪽 고르다 허리마다 실안개를 머금은 제석산 길 산 능선을 따라오는 여명 빛이 상서롭다 산 벚꽃 꽃망울 마다 분홍물이 환하고 몇 점 남은 하얀 눈꽃 능선 따라 남았어도 봉싯 솟은 가지에는 샛노란 산수유빛 초록도 몸을 푸느라 산길이 술렁인다 2022. 11. 5.
아바타 한 켤레 아바타 한 켤레 잠이 깬 새벽녘에 물끄러미 바라보니 현관 쪽 신발들이 제 멋대로 잠들었다 고단한 입을 벌리고 코를 고는 시늉이다 늘 그렇게 아옹다옹 하루를 부대끼다 저들도 가족이라 저녁에 모여들어도 서로가 지나 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 오고 가는 내 모든 길 묵묵히 따르느라 굽도 닳고 끈도 풀린 가여운 내 아바타여 부푸는 밤공기를 안고 나처럼 누웠구나 ※ 제주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22.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