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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지린 산문

171111 지리산 종주기縱走記

by JIRIN 2023. 6. 5.

(수필)

지리산 종주기縱走記

                                                                                                                                                       문제완

 

   등산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산책하듯 뒷산을 오르기도 하고, 우리나라 한국의 등뼈 같은 백두대간 산맥을 오르내리는 이도 있다. 또 하루나 이틀 이상 걸리는 지리산 같이 높고 긴 코스에 많은 산봉우리를 넘는 종주도 있다. 보름이나 한 달 이상 걸리는 둘레길과 다양한 트래킹 코스를 답사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친구들과 모임은 시월 중순이었다. 2차를 가볍게 하자는 누군가의 꼬드김에 친구들 모두 끌려(?)간 자리에서, 누군가가 취기에 우리 이제 나이가 육십 중반이 되니 이참에 지리산 종주 한 번 가자는 의견에 모두 지리산 종주에 동의했다.

   118일을 D데이로 잡고, 출발을 위해 대피소를 예약하고 배낭과 짐을 꾸렸다. 광주에서 구례까지 직행버스를 이용했다. 구례에서 성삼재 가는 길도 군내버스를 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성삼재에 10시 무렵에 도착했다. 노고단을 향해 걷는 발걸음은 상쾌했다. 이제 지리산 종주는 시작 된 것이다.

   나는 예전에 여러 번 지리산 종주를 하였으나, 2010년 발목 골절이 된 이후 이번이 7년 만이다. 친구들 중에는 처음이거나 두 번째인 사람도 있고 30여 번 넘겨 종주한 친구도 있다. 예전 종주할 때 보다 배낭은 다소 가벼워졌으나 삼 십 키로 이상 나가는가 보다. 꽤나 무겁다. 노고단에서 잠시 휴식하고, 삼도봉을 지나 연하천 대피소에 짐을 풀었다. 대피소 벽면에 있는 시 한 구절이 우리를 반긴다.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마지막 구절

 

   연하천 대피소에는 경기도 안성에서 온 남녀 고등학생들 일행과 젊은이들이 종주의 피곤함을 덜어내느라 부산하다. 우리 일행도 취사장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나는 잠자리 들면서 연하천에 대한 감흥을 담은 시심에 잠긴다.

 

하늘 아래 구름 있다 구름 아래 노을 있다

산행은 아름차다 늘어진 힘줄이다 

목울대 그곳에 선뜻 자리한 신음 자락

 

옹달샘에 샘물은 타령조로 흐르고 

산행에 땀 식히려 차가움을 마신다

밀려 온 대피소 잠자리, 고단하다 아우성들

 

- 문제완, 현대시조 지리산 연하천전문

 

   다음 날 아침, 연하천에서 벽소령을 향해 출발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거리는 25.5이나 평이한 길 두 배의 노고는 필요하다. 암릉으로 이뤼진 산행길이라 한층 힘들어지고 있었다. 형제봉을 지날 무렵 높고 낮은 산길은 무거운 배낭과 더블어 고난의 행군이다. 벽소령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지리산 종주 중 가장 어렵고 지루한 구간인 벽소령에서 세석 대피소 구간을 지나간다. 중간지인 선비샘에서 단비 같은 샘물 한 모금 마셨다. 칠선봉과 영신봉을 지나는 코스는 정말 만만치 않다. 체력이 바닥났다고 힘들어 하는 친구를 다른 친구들이 서포터하며 암릉들을 오르내린다. 어렵게 도착한 세석 대피소 취사장에서 라면과 햄으로 늦은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어두움이 내린 장터목 대피소 도착한 일행은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일박 한다. 평소 장거리 산행을 자주하지 못한 친구는 많이 지치고 힘들어 했다. 다음 날, 멋진 일출장면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고 깜깜한 산길을 타고 제석산과 통천문을 거쳐 천왕봉을 올랐다. 천왕봉에 다다르니 황홀하기 짝이 없는 해돋이 장면이 연출 되고 있다.

 

   이원규의 앞의 시 첫머리에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라 설파한 대목이 생각난다. 삼대가 발복한 덕분일까, 그야말로 천왕봉의 황홀한 일출 장면에 친구들도 종주의 고단함을 잊는 듯하다. 한참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듯 일출을 바라다 보며 해가 솟아 오른 장면에 일제히 환성이 터트린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종주를 하였으나 이번만큼 일출이 멋진 때가 없었다. 천왕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한참을 운해와 일출 장면을 바라보았다. 천왕봉에서 법계사를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법계사는 보물 제473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우리 모두 약수 한 사발 마시며 육체의 피곤을 잊었다.

 

   지리산 종주는 산행인들에게는 프로로 가는 관문으로 통한다. 지리산은 흙산이지만 오르내리는 곳은 대부분 돌계단이거나 암릉이다. 해발 1,915로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에는 무수한 산행코스가 있다. 그 중 종주가 으뜸이며 화엄사에서 대원사 가는 코스 속칭 화대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이 절대적이다.

   산청군 중산리에서 진주행 버스를 기다리던 우리 일행은 맥주 일 배 나누며 언제 다시 친구들과 동행하게 될지 모르니 지리산 종주기념 포토북을 만들자 했다. 내가 사진을 모아 포토북을 만들었다. 소형으로 깜찍한 사진집이다. 산행 중 만난 정겨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많은 전설이 살아 있는 지리산의 행복한 종주 산행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본다. 고정희 시인의 지리산의 봄을 읊조리며 귀갓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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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 고정희, “지리산의 봄 1” 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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