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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지린 산문

고구마

by JIRIN 2023. 3. 10.

고구마

지린 문학 세상/지린 삶의 글

2009-05-02 21:05:30


고구마

智麟 문제완

 

겨울이 되어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면 달고 맛있는 군고구마 생각이 난다. 두 손을 호호 불만큼 추운 날에도 어김없이 골목길 어귀에 등장하는 군고구마 장수, 퇴근길에 큰 드럼통으로 만든 고구마 구이통에서 구수하고 알맞게 구워진 군고구마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큰 선물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게 봉지를 건네면 무척이나 반겨하던 아이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입천장을 데는 줄도 모르고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먹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끼니 걱정하는 집이 거의 없지만, 아니, 비만 걱정에 무엇을 먹더라도 칼로리 계산부터 하는 시대가 되었으나, 내 어릴 적 시절에는 주식으로 고구마를 먹었으며 시장기를 달래곤 하였다.

고구마는 메꽃과에 속하는 쌍떡잎 식용작물이다. 중남 아메리카가 원산지이고, 아시아지역으로 전해져 브라질과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가 주생산지가 되었다. 우리와 익숙하게 된 것은 영조 39년, 조엄이 일본 대마도에서 처음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어원은 고꼬이모(孝行藷)에서 유래하며, 남방에서 도입되었다고 하여 남저(南藷)라고 불렸다고 한다.

고구마는 감자와 이웃사촌간이다. 감자는 여름철에 주로 우리 식탁에 오르며, 고구마는 가을과 겨울 내내 우리를 반겨준다. 고구마는 기름지지 않은 땅에서도 잘 자란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고구마는 오히려 너무 크거나 싱거워 맛이 덜하다. 고구마는 씨종자를 쓰지 않고 순으로 잘라 심는데 넝쿨식물로 수확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면 고구마를 캐어 큰 방 한켠에 수숫대나 촘촘한 대나무 발을 이용하여 이듬해 봄에 고구마를 땅에 묻을 때까지 잘 보관해야 한다.

한 겨울 눈이 펑펑 내리고 겨울밤이 깊어갈 무렵, 저녁 먹은 지 한참만이라 배는 출출하고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던 그 시절, 어머니가 고구마를 꺼내와 깎으면 우리는 올망졸망 그 앞에 앉아 검은 눈을 반짝이며 어서 고구마가 깎아져 손에 들려지길 학수고대 했다. 드디어 고구마를 받아들고 아껴가며 한 입씩 베어 물면 아삭아삭 씹히던 그 느낌, 담백한 고구마의 단물이 입안에 가득 고여 오던 그 맛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과자와 각종 인스턴트식품으로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이 그 맛을 느낄 수 있을까?

30여 년 전 남도 항구도시인 여수에 소위 경사가 심하다하여 일본식으로 불리던 '오사카길' 옆으로 진남관을 오르면, 강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 할머니가 골목길에서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퇴근길에 이곳을 지나다니곤 했는데, 나는 이 할머니에게 오랜 단골이다. 할머니는 추운 다락방에서 겨울을 나곤 했는데, 그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느라 그렇게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오신 할머니의 미담은 고구마와 함께 내 가슴 깊은 곳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한 친구 이야기를 해보자. 여수 부근 ‘두라도’ 라는 섬에서 근무하던 20대 총각시절에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초대를 받았다.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여 친구네 집으로 갔다. 그런데 찐 고구마 한 소쿠리를 내놓았다. 고구마를 먹으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그 친구는 밥을 내오지 않는 것이었다. 고구마로는 끼니가 되지 않는 나는 이제나 저제나 밥상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끝내 밥상을 받지 못하였다. 고구마가 점심이었다. 아니, 친구네에겐 고구마가 바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해 주는 주식이었던 것을 당시 나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요즈음엔 고구마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황토밭에서 자란 황토고구마, 밤 맛이 난다고 밤고구마, 속살이 호박색깔이라고 해서 호박고구마 그리고 요즘 건강에 좋다는 자색 빛의 자색고구마 등 종류가 많다. 고구마를 고를 때는 윤기 있고 선명한 적자색을 띠는 것이 좋다고 한다. 비만에 대해 걱정이 많은 이들은 고구마 다이어트를 권장해 볼만 하다. 밥보다 칼로리가 적으며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한다고 한다. 또 체력과 기력을 좋게 하는 약효가 있다고 하니 꾸준히 먹으면 효과를 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고구마는 열량이 높은 편에 속하므로 과식하면 소용이 없다고 한다.

고구마를 읊은 시인도 있다. 이성희 시인은 '군고구마'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의 땀방울이 근육으로 영근 알통만한 고구마를 아궁이에 던져 넣으며 하나 둘 호명되는 식구들의 이름’이라는 시귀에서 고구마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지난 해 까지 나의 근무지였던 장성 동화마을, 그 동화마을에서 만난 촌로들은 늦가을이면 수확한 고구마를 도회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바리바리 싸서 포대로 보낸다.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고구마를 매체로 이어가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정(情)은 각박한 삶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예전에 고구마가 간식이 아닌 주식이었듯 온전한 부모의 정분을 그들은 먹고 있는 것이다. 박토에서 자란 고구마는 우리들의 삶에 애환이 되고 가족의 뿌리가 되어 한줄기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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