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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지린 산문

별호(別號)의 변(辯)

by JIRIN 2024. 4. 29.

별호(別號)의 변()

문제완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몇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까? 호적에 오른 이름과 족보의 이름은 다를 수 있고, 자기 이름이 촌스럽거나 마음에 들지 않다고 개명하는 이들도 종종 본다. 어린 아기 때 애칭으로 불러주던 아명과 임금이나 정승 등에게 사후에 붙여주는 시호라는 것도 있다. 또한 연예인의 예명과 직장이나 직업에 따라 붙여지는 직명도 있을 터이다.

나의 경우, 본명은 하나이나 별호는 꽤 많았다. 한국동란과 여순반란사건의 수난이 겹친 곳이 고향이었고, 먼저 간 손위 형과 누나가 둘 있었다. 그런 탓에 늦자식이 무탈하게 오래 살라는 뜻으로 부모님은 외가 성인 과 장수의 상징인 바위의 사투리인 바구를 붙여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나는 어릴적에 이 장바구라는 별명이 죽도록 듣기 싫어 했다.

그 후 20대 초반 시골교회 주일학교 선생을 할 적에는 문선생으로 불리다가 직장생활하면서 주사’, ‘계장’, ‘과장그리고 국장이란 직명이 성과 함께 따라 다녔다. 한 때는 술자리에서 젊은 객기로 발언권을 통째로 잡아 분위기를 흔든 덕분에 문박사란 질책성 별명도 있었다.

천리안 등 정보통신을 거쳐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닉네임이 생겼다. 아이디와는 별도로 닉네임은 나의 성을 거꾸로 뒤집어 성에 붙여 문곰이란 장난기 많은 것과 곰탱이등을 사용했다. 익명 사용이 가능한 사이버 세상에서 누구하나 이 닉네임을 가지고 탓하진 않았다.

허나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쯤, 예술사진 한답시고 사진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다. 여기저기 인터넷에 들락거리다가 알게 된 광주 모 사진 카페의 오프 모임이 있었다. 회원들 얼굴도 궁금하고 사진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모임 장소를 나갔다. 난 회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형님으로 불리며 곰탱이 형님이 되었다. 이게 뭐람? 최근에 사용하던 닉네임이 이렇게 제대로 불릴게 될 줄이야...

그날 모임이 끝나자마자 닉네임을 바꾸기로 하고, 어떤 이름으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했다. 한참 동안 바꿀 이름을 생각하다 30여 년 전에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름 지린(智麟)’이 생각났다. 20대초 문청시절에 지어 놨던 그 별호가 이제야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된 것이다. 닉네임을 바꾼 다음날부터는 사진 카페 회원들에게 지린 형님이 되었다.

문예창작 공부를 하다 문단에 나올 기회가 마련됐다. 늦깎이로 시작하다보니 또 다른 세상이었다. 멋모르고 닉네임 겸 아호를 앞세운 명함을 돌리다 보니 일부 선배시인들 중 어떤 이는 네가 벌써 무슨 호냐?”는 핀잔을 주기도 한다. "! 그게 호가 아니고요. 닉네임 입니다."하고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지린(智麟), ‘지혜로운 기린이란 뜻이다. 기린은 동물 가운데 가장 덕스러움을 상징한다. 공자의 시경춘추에 성군의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 기린은 수컷인 기()와 암컷인 린()의 합성어다. 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이를 기린아라고 부르고 있다. 어찌 됐건 이렇게 거창한 별호를 가지게 된 연유이다.

누구나 본명이외 별호 하나 정도 가지고 이를 불러주는 여유로운 문화공간이 많으면 좋겠다. 조선 선비들에게는 아호가 필수적이듯 말이다. 아호는 스승과 어른들이 지어주시거나 자신이 자작하기도 한다. 20대 초반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우연히 지은 별호 지린이 작명 이후 40여년이 지나 요즘 아는 이들에게서 불려지고 있다. 선견지명이 있는 아호인지 나의 인생여정은 이를 결정지을 것이다.

 

2013. 1. 29  ; 다음블로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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