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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문학/지린 산문

정호승 시인 초청 특강 (제목 : 사랑하다 죽어 버려라)

by JIRIN 2023. 1. 3.

정호승 시인 초청 특강 (제목 : 사랑하다 죽어 버려라)

 

   0 장소 : 광주 북구 평생학습문화센터 

   0 일시 : 2009. 11. 3(화) 오후 4시

   0 주최 : 광주광역시 북구 / 주관 : 광주.전남작가회의

정호승 시인과 기념사진 한 컷 남기다

 

정호승 시인이 시집에 자필 서명을 하시다

 

정호승 시인 특강 요약

☆ 특강 요약 내용은 필자의 이해에 도움을 위해 남긴 것으로, 기록 상 오류가 있을 수 있음 ★

 

 [내인생에 힘이 되어주는 시]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특강 내용] 시는 침묵이다. 시는 삶 속에서 무수히 숨어 있다. 시인은 이러한 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이란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존재다. 살아 생전 친분이 남 달랐던 정채봉 선배(동화작가, 순천 출생)가 보고 싶어진다.‘나팔꽃’은 아버지가 치매로 나팔꽃 씨를 환약으로 잘못알고 드시려는 것을 보고 시상을 떠올린다. ‘환약으로 알고 드셨다.’라는 행이 산문에서 운문으로 전환한다.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에게서 대들보와 같은 부성애를 느낀다.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꽃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 신발처럼

 

[특강 내용]

이 시는 시인이 어머니의 죽음을 위한 자장가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노후로 인해 치아와 신체가 나약해졌다. 이러한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인은 어릴 적에 받은 모성애를 되돌려 주려애틋한 마음이 있다.

시 내용 중 ‘산 그림자’는 어머니의 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는 시인 본인에서 노약해진 어머니에게 치환하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표현한다. 시인은 말한다. 시의 역할은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위안할 수 있는데 있다고...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를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특강 내용]

신축한 암자에 기거한 여자 스님의 초청에 응한 시인은 풍경 2개를 사들고 방문한다. 스님 대신 풍경을 처마에 달고 청아한 풍경소리에 매료된다. 이 풍경소리와 운주사를 방문하여 부부 와불을 보고 지은 사랑시이다.

시는 밥솥에 붓는 ‘물’과 같은 존재이다. 밥솥에 물을 부으면 ‘시밥’이 되는 형상이고,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살찌우는 것이다. 내가 지은 시를 가수들이 노래의 옷을 입히면 감동은 배가 된다. 요즈음 인터넷에는 유사작품이나 모방작이 무분별하게 난립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특강 내용]

이 시는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다. ‘그늘’과 ‘눈물’이 주된 시어이다. 시인이 인생의 그늘과 눈물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시인은 말한다. 그늘이 있어야 햇빛도 존재한다. 햇빛만 존재하면 사막이 된다. 날씨가 계속 좋으면 황폐화한다.

그늘이 있어야 새가 날아들고 인생도 풍부해진다. 인간이 소중한 것은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고 이것이 행복이 된다. 내 인생이 그늘에 있을 때에도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굳세게 딛고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특강 내용]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것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것이다. 바닥도 만찬가지다. 바닥에 있다고 생각하면 바닥에 떨어질 것이고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 바닥에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니면 심연 속으로 떨어질 것이니까. 시인은 나름 바닥인생을 살아 보면서 인생에 대한 성찰을 얻은 것이다. 시인 스스로 위로 삼을 수 있다고 한다. 바닥은 없다. 있다면 딛고 일어나면 된다. 긍정의 바닥이다.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특강 내용]

이 시의 1행에서 11행까지는 시인이 경험한 내용을 묘사한 산문형이고, 12행 이후는 운문으로 진술하는 내용이다. 11행은 산문과 운문의 경계이고 강이 된다. 전반부 묘사 내용 중 ‘순간접착제’는 시인이 성모상을 깨뜨린 경험에서 연유되었고, 북인도 기행시 룸비아에서 흙으로 부처를 사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시인의 삶과 닮았다.

 시인은 한 스님과 선문답을 예로 든다. ‘깨어진 종(鐘)의 파편을 들고 치면 종소리가 날까?’라고 질문의 답은 ‘맑은 소리가 난다’이다. 종의 파편마다 맑은 종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모든 파편난 종에는 맑은 종소리가 있다. 산산조각난 인생에도 살아가는 가치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이 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특강 내용]

성당의 창은 통유리가 아닌 조각 유리로 만든다. 이는 햇빛에 아름답게 비추게 하려는 것이다. 괴퇴는 ‘모든 빛은 색채의 고통이다.’고 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이 조각난 이유와 연계하여 이해한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외로움이다. 산그늘도 외로움이다.

시인 박완서의 경우 남편과 자식을 먼저 보냈다. 박완서는 ‘외로움이나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라 했다고 한다. 극복은 경쟁, 투쟁이고 견디는 것은 인내인 것이다. 나이를 들면 인내하고 더러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특강 내용]

수선화는 인간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은유로 상대적이다. 고독은 절대적이고 존재적이다. 인간은 외로워 자살을 한다. 그러나 자살은 질병이다. 인간은 모두 외로운 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외로움이다. 배고프고 인간이여서 외롭다.

시인은 친구가 외롭다는 말에 ‘외로우니까 사람이야.’라는 답하는 것이 시상이 된다. 시의 내용 중간에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라는 내용은 어머니의 존재감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외로움이 된다.

 

햇살에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특강 내용]

시인의 아침, 방안에서 경험한 모든 것은 시상이 된다. 창문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의해 먼지의 존재가 보이고 나의 존재가 먼지를 찬란하게 비춰주니 햇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말한다. ‘여러분 삶이 한편의 시집이고, 매순간 시 한편이 같이한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감사하면서 읽으면 행복이고 아니면 불행이다. 감상할 수 있음이 부유함이다.

 

술 한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들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특강 내용] 시인은 스스로의 ‘내 인생의 분노’하며 하는 말이다. 내 인생은 나에게 해주는 게 없다고 푸념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재함에 감사하는 반전이 있다. 분노를 사랑으로 바꿀 수 있는 은유가 있어 다행이라는 시인은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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